11. 폭우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1

폭풍 치는 밤이 되면
무서워!
밖을 나갈 수 없어
천둥과
소나기
번개
몸이 두쪽으로 갈라질 것 같아

제발
인형
지금은 날 부르지 마
폭우가 쏟아지고 있어
어둠이 밀려오고 있어

아! 창문 두드리는 소리
인형이 추위에 떨며
날 부르고 있어

번개야
곧 천둥이 들이 닥칠거야
안돼! 인형
발이 안 떨어져
몸이 움직이질 않아

으악! 살려 줘
인형
날 살려 줘
무서워
네가 없다는 게
혼로 존재한다는 게
너무 무서워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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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2

이제 마음을 가라앉혀 다행이야
슬픔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야
그 누구도
날 알아보지 못해 다행이야
다들 인형을 사랑했던 과거를 기억 못해 다행이야
의연해진
당당해진
나만 바라보아 다행이야
마음 속에서
피끓듯
인형이 살아 있음
아무도 몰라 다행이야
밀애를 즐기는 걸 들키지 않아 다행이야
소중하게
살아난 인형이 있어 다행이야
아직 변하지 않은 내가 있어 다행이야
사랑한다는 말 잊혀지지 않아 다행이야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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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13. 일치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3

인형 너를 보았어
너의 결정을 뿌리던 그 강에서
네가 좋아하던 그 산에서
우리가 호흡하던 그 공기에서
네가 걷고 내가 따라가던 그 거리에서
네가 사랑하던 그 꽃에서
네가 즐겨 찾던 그 까페에서
네가 탐독하던 그 시집에서
내게 미소짓는
너를 보았어
내게 말을 거는
너를 만났어
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어
내 그림자 속으로
내 몸 안으로
눈 속으로
귓속으로
입 속으로
가슴으로
머리로
손발 속으로
스며드는
너를 보았어
점점 네가 되는 나를 보았어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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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4

사람들이 오면
정말 싫어
다정히 이야기하던
인형이 사라져 버려

사람들이 물으면
정말 싫어
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줄 알면
인형은 떠나 버릴 거야

아무도 없는
조용한 산길 걸으며
아무도 모르는 이야길
우리만 하는 거야

그 무엇도 방해하지 않는
저 푸른 하는 위에
우리 혼이 함께 걷는 줄
누구도 모를 거야
인형이 함께 있는 줄
짐작도 못할 거야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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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15. 햇살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5

어느새
내 어깨에 손을 얹고
기대어 선
인형

밤새의 두려움에
잠 못 들었는지
큰 하품처럼
내 눈을 부시고
무릎 위로 길게 누워 자고 있구나

성큼성큼
또는 조금조금씩
내게 안겨 오는 인형

쉴 자리가 필요하니
내게 몸을 맡기렴
넓은 나의 바다로 오렴
너의 포근한 형의 가슴으로

의지와는 상관도 없이
시간의 이별 열차 눈물을 흘리며
아침이면
또 멀어져 가는 인형

조금조금씩
또는 성큼성컴
따라가려 해도
쫓아가려 해도
늘 저 만치서 날 부르는 인형

마법을
마법을

어떡하면
어떡하면
너의 그 족쇄를 부시고
너의 그 저주를 풀고
항상 만날 수 있겠니
영원한 생명으로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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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6

인형
숨어야 해
누군가
널 찾고 있어
널 잡아 갈 거야
어서
어서
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
난 아무것도 안 본 거야
옳지
저 커튼 뒤가 좋겠어
아니
이 옷장 속이 좋겠어
인형
안돼
어디든 숨어야 해
몸을 감춰야 해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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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착란 7

·아무 일도 아녜요
이상하기는요
보세요
무슨 일이 있나
라디오 소리겠죠
아아 예
·그 금방 껐어요
무슨 일은……
·창문이요
이제 닫아야죠
내려가 쉬세요
저도 좀 쉬려구요
예 !
걱정마시구요
쉬세요
·
·
·
·
휴……
들킬뻔 했어
인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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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정신병동 1

아니야
난 몰라
인형을 몰라
정말이야
기억도 없어
날 내보내 줘
나가야 해
누군가
절며!
절며!
기다리고 있어
누군가
추위에 떨며
날 찾고 있어
보내 줘
난 인형을 몰라
생각도 안나
제발
날 풀어 줘
이 창살을 열어 줘
고통을 끊어 줘
제발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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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19. 분노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정신병동 2

문을 열어
나가야 겠어
아무도 날 가둬 둘 수 없어
권리가 없어
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
훔치지도 사기 치지도 않았어
난 죄가 없어
나가겠어
이럴 순 없어
어서 이 사슬을 풀어
어서 이 쇠문을 열어
비켜
내 몸에 손대지마
자유인이야 난
구소하지마
난 나갈 거야
자유롭게 될 거야
만날 사람을 만나고
있을 곳에 있을 거야
난 분석 당하기 싫어
난 정상이야
날 막지마
인형을 살리러 가야 해
뭘 알아
너희들이
가까이 오지마
주사를 치워
가…까……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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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20. 애원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- 정신병동 3

나가고 싶어요
인형은
내 방에 있어요
굶고 있어요

나가고 싶어요
인형은
벽장 속에 숨었어요
무서워 떨고 있어요

아무도 찾을 수 없어요
나 이외엔
나오지 않을 거예요
내가 부르기 전엔
아무도 알 수 없어요
인형의 변한 모습을

나가야 해요
나가야 해요
무서워 울고 있어요
인형이 떨고 있어요
굶고 있어요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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_ [오름, xdg]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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